포근한 햇살이 내리 쬐고 있는 어느 오후 
소년과 소녀가 병원 복도에서 마주쳤다.
네 개의 눈동자가 마주치는 순간 
두 사람은 영혼이 촉촉하게 젖어드는 느낌을 받았다.

둘은 서로의 눈빛에서 슬픔을 보았다. 
어쩌면 동병상련일 수도 있다. 
불과 몇 시간 만에 두 사람은 
아주 오랜 친구 같은 사이가 되었다. 
그 뒤로 두 사람은 언제나 함께 지내면서
차츰 외로움을 잊게 되었다.

그러던 어느 날 
두 사람은 자신들의 병이 
도저히 고칠 수 없는 지경에 이르렀다는 
사실을 알게 되었다.
 
두 사람은 부모를 따라 각각의 집으로 돌아갔다. 
그들의 병은 시간이 갈수록 악화되었다. 
소년과 소녀는 서로 편지를 하며 
안부를 묻고 마지막까지 병과 싸울 수 있도록 응원했다. 

편지 중의 한 마디 한 마디가 
그들에게 커다란 힘이 되었다. 

그렇게 하루하루 시간이 흘러 
어느덧 퇴원한지 3개월이 되었다.

그러던 어느 날 소녀는 남자 아이가 보낸 편지를 쥔 채 
편안히 영원한 잠에 빠져들었다.

입가에 미소마저 감돌고 있었다. 
소녀의 어머니가 구슬프게 흐느끼며 
소녀의 손에서 편지를 빼냈다.

“운명이 괴롭혀도 두려워하거나 방황하지 마. 
  네 곁엔 항상 내가 있어. 
  언제까지나 너를 사랑하고 지켜줄 거야. 
  넌 혼자가 아니야……”

소녀의 어머니는 편지를 끝까지 읽지 못하고 
딸에게 엎드려 하염없이 울었다.

다음 날 소녀의 어머니는 딸의 서랍에서 
부치지 않은 편지 한 묶음을 발견했다.

가장 위쪽에 있는 편지에 
“엄마, 보세요.”라고 써져 있었다.

"엄마가 이 편지를 볼 때면 
 제가 이미 세상을 떠난 뒤겠죠. 
 그런데 엄마, 부탁 한 가지 있어요. 
 저와 그 아인 생의 마지막 순간을 
 함께 하기로 약속했거든요. 
 그런데 제가 그만 약속을 지키지 못하게 됐네요. 
 그러니 엄마가 이 편지들을 순서대로 
 그 아이에게 부쳐 주세요 
 그러면 그 아인 제가 꿋꿋이 살아 있는 걸로 알고 
 조금이라도 더 오래 살 수 있을 거예요."

딸의 유언을 읽고 난 어머니는 
소년을 만나보고 싶었다. 
만나서 딸의 이야기를 전하고 격려해 주고 싶었다. 

소녀의 어머니는 편지봉투에 쓰인 주소를 보고 
소년의 집을 찾아갔다. 

집 안으로 들어서는 순간 
그녀는 영정사진 안에서 웃고 있는 
소년의 얼굴을 보고 멈칫했다. 

소년의 어머니를 쳐다보자 
그녀는 울면서 테이블에 놓여있던 
편지 묶음을 건네주었다.

“이거, 저희 아들이 남긴 거예요. 
  아들이 죽은 지 벌써 한 달이에요.

  죽기 전에 자기랑 똑같은 운명의 여자 아이가 
  자기 편지를 기다릴 거라고 
  이 편지를 남겼어요. 
  지난 한 달 동안 제가 그 앨 대신해서…….”

그녀의 말소리는 울음소리에 묻혔다.

소녀의 어머니가 다가가 
소년의 어머니를 꼭 끌어 안으며 
중얼거렸다.

“참 아름다운 약속이군요.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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